로켓펀치 호감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단은 눈빛부터가 다르다. 실없는 소리를 해도 돌아오는 웃음이 너그럽고, 은근히 친밀한 농담과 장난의 대상이 된다. 학생 용돈으로 사기엔 값이 좀 나가는 물건들이 응원이라는 포장을 두르고 온다. 같은 사람에게 선물을 두 개 이상 받으면 그때부터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거절의 말은 외운 것처럼 자...
시합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연습이 끝나면 함께 저녁을 먹었다. 다른 부원들이 몇 번 낀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둘이었다. 메뉴는 소바, 우동, 라멘을 돌아가며 먹다가 면이 질릴 때쯤 텐동이나 규동 같은 덮밥류를 또 돌아가며 먹었다.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오히려 입맛이 없는 날에는 편의점 샌드위치나 빵으로 대충 때우기도 했다. 정대만은 생긴 것처럼...
창밖의 파도 정대만이 머리를 잘랐다. 어디서 자른 건진 모르겠는데 어울리는 스타일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고 무작정 스포츠맨처럼 밀어주세요, 한 게 분명해 보였다. 옥상에서 패배한 건 태섭이었지만 어쨌든 꼴 보기 싫은 장발을 눈앞에서 치우는 데에 성공했으니 결과만 두고 보면 승리인지도 모른다. 태섭은 대만과 나란히 걷는 동안 의기양양했다가, 그가 뻣뻣한 로...
스파크 타임 SPARK TIME / 나 사실 외계인이야. 나랑 같이 살아줘. 스가와라가 그렇게 말했을 때 사와무라는 구운 아스파라거스 꼬치를 먹고 있었다. 어릴 땐 외식은 무조건 고기였는데 요즘엔 채소나 과일이 당기는 게, 나이가 들긴 했나보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똑같이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반질반질한 눈동자 너머를 가늠해보던 사와무라가 낮은 ...
unknown happy 국제선 출국 게이트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보안요원들이 민첩하게 대기줄을 통제했다. 뭐야, 연예인이야? 연예인은 아닌데 그 있잖아, 유명한 사람. 실제로 보니까 완전 애 같이 생겼네. 몇 살이래? 해외 리그 보러 가는 건가? 나 오늘 아침에도 방송 보고 왔는데 진짜 신기하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며 정점을 찍으려던 찰나에 ...
귀환자들의 방 배정은 파도가 맡아서 했다. 번호에 사람을 선착순으로 집어넣는 해일의 방식은 재활팀에서 용납해주지 않았다. 파도는 탐사자의 유전 정보를 분석하고 여행 경로를 확인해서 휴식에 최적화된 방을 손쉽게 선별해냈다. 그건 때때로 창문 하나 없는 지하의 밀실이기도 했고 사방이 통창인 최상층 스위트룸이기도 했다. 기지국의 숙소에 오래 머무르는 귀환자는 없...
목 뒤의 칩을 뜯어내자 약하게 감전된 것처럼 저릿했다. 끈적한 액체가 길게 늘어지는 느낌이 불쾌하면서도 아팠기 때문에 분명 살점까지 같이 떨어져 나온 것이라 생각했는데 만져보니 피부가 매끈했다. 환각 증상이었다. 동행했던 의사가 먼저 떠나는 바람에 스스로 마취제를 주사해야 했는데 용량 조절에 실패한 모양이었다. 멀쩡한 척하려 애쓰고는 있지만, 사실은 지금 ...
RE- / “다시 말해봐.” 대답 없는 얼굴을 향해 미간을 찌푸리자 쿠로오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잘못을 알고 있는 어린이처럼 청바지 위로 연신 손바닥을 문지르는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나이 먹고 그런 장난이 치고 싶냐고, 안 그래도 마감이 코앞이라 예민한 사람한테 그럴 생각이 드냐고 윽박지르고 싶었으나 덜컥 목이 메었다. 거짓말이나 장난이 아니라...
오버 더 라인 / 목차에 없는 항목이 갑자기 튀어나온다면 이유가 뭘까? 남자는 그렇게 묻더니 자기 마음대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미니 냉장고를 열어 내용물을 탐색하더니 며칠 전에 선물 받은 고가의 와인을 꺼내 맨손으로 코르크를 땄다. 잔을 찾으려는 시늉도 없이 곧장 입으로 가져가려는 것을 간발의 차로 붙들자 까만 눈동자와 코앞에서 마주쳤다. ...
자유낙하 / 눈을 감으면 과거의 풍경이 스친다. 분명 자신의 기억인데도 회상은 타인의 시선을 빌린 듯 낯설게 그려지는 것이 의아하다. 너무 오래된 추억은 가끔 꿈이나 전생처럼 느껴지는데, 그 시절을 같이 나눈 사람이 곁에 없었더라면 모조리 잊고 말았을 것 같다. 우리는 매번 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비스듬히 문에 기대선 쿠로오가 대각선을 바라보며 속으로만...
정신을 차려보니 학교 복도였다. 두고 간 무언가를 가져오기 위해 오사무를 먼저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근데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은…. 멍하니 걷는 바람에 층을 헷갈린 건지 교실 앞문 위의 명패가 모두 파란색이었다. 3학년 층까지 올라와 버린 것이다. 날이 지랄 맞게 춥다 했더니 머리까지 굳어버렸나. 혀를 차고 다시 계단으로 향하려는데 불쑥 눈앞에 선배...
“객실에서 자는 게 훨씬 편할 텐데.” 불만스러운 시선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키타는 꿋꿋이 말했다. 내 방은 임시로 만든 거라 둘이 자기엔 좁아. 아츠무는 예전부터 선배의 말하는 방식이 돌을 던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 뭐야, 난 개구리인가. 자조적으로 생각하며 키타의 흰 목덜미를 관통할 것처럼 쳐다보자 그가 헛기침했다. 평생 직접 말하지는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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